노년예찬론
청춘예찬론이나 인생예찬론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왔다.
물론 청춘 예찬론은 젊은 시절 청년기에 젊음이라는 무기로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도 극복할 수 있고 또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논리로, 젊은이들에게는 꿈과 희망 그 자체인 것이다.
인생예찬론은 인생은 진지하게 또 열심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한번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라고 충고를 해주고 있다. 신이 준 영혼과 뛰는 가슴으로 승리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라는 롱펠로우의 인생예찬론이 유명하다.
그러나 오늘은 노년예찬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니 노년예찬론을 펼쳐보고 싶다.
어제 오후 석촌호수를 1시간 정도 산책하면서 많은 노인 분들을 만났다.
간편한 복장으로 체력단련장에서 각종 운동을 하고 있는 노인들, 트랙을 천천히 돌면서 걷기 운동을 하는 노인들, 몇 명 친구들과 같이 벤치에 앉아서 담화를 나누고 있는 노인들, 취미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들, 손주들 손을 잡고 같이 다니면서 놀고 있는 노인들……
혼자 임자 없는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노인들, 벤치에 길게 누워서 잠을 자는 노인들, 리어커에 폐박스와 폐비닐을 한가득 수거하여 어렵게 밀고 가고 있는 노인까지……
노인 분들의 이러한 활기찬 모습, 신나는 모습, 아름다운 모습, 재미있는 모습을 보면서는 가슴이 흐뭇하였다.
한편으로 노인 분들의 외롭고 쓸쓸함 모습, 고독한 모습, 생계를 걱정하며 일해야 하는 모습,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슴이 허전하고 마음이 아파 오는 것은 왜일까?
그러면서 인생의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노년이 아름다운 인생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오면서 생각해 본 것을 정리해 보자!
우리 인생에 있어서 노년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나이 들어서 일도 제대로 못하고, 가정에서 또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노년이 우리 인생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닐까? 가정에서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는 아닐까?
나의 결론은 ‘아니다.’이다. 아닌 정도가 아니라 노년은 우리 가정에서 꼭 필요하고, 노년은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하고, 노년은 우리 국가에도 꼭 필요한 존재이다.
계절에 있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봄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줄기가 튼튼하게 자라고 녹음을 푸르게 하는 여름만이 중요한 것은 더욱 아니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맺는 가을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을이 없는 결실, 가을이 없는 계절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하다.
결실을 맺은 가을 이후는 겨울이다.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 노는 계절인가? 불필요한 계절인가? 그렇지 않다. 결실을 이루느라 고생을 하였으니 이제는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다음 절기를 위한 준비도 해야 한다. 다시 새로운 봄을 맞아서 다시 새로운 새싹을 피우기 위해 씨앗을 준비하고 이런저런 농사를 위한 계획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노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바로 결실을 맺는 시기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결실을 맺는 시기인 것이다. 직장생활에서 마무리를 멋있게 장식하고 박수 받으며 퇴직하는 시기이다. 자식들이 잘 자라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출가를 시키는 축하와 축복을 받는 시기이다.
또한 노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 동안 소홀히 했던 가족들에게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가족들과 더 많은 얘기를 하고, 또 국내외 여행도 하면서 그 동안 고락을 함께 해준데 대해 감사를 전해야 한다.
그 동안 자주 만나지 못 했던 이런저런 친구들을 만나서 교류를 갖고 우정을 더욱 돈독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종교 활동에도 더욱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거의 하지 못했던 봉사활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시기이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노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노인들아! 한번밖에 없는 우리의 노년을 사랑하자. 그리고 즐기자.
노년을 사랑하고 노년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한다.
노년에 일을 하든, 일하지 않든 간에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50세를 지천명, 60세를 이순이라고 한다. 50세에는 하늘의 순리를 알게 되는 나이이고, 60세는 비로소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해하게 되는 나이이다. 하늘의 순리를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마음을 편하게 갖지 못 한단 말인가?
정말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편히 갖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둘째, 일을 하고 활동을 해야 한다.
생계를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이때는 큰돈은 벌수는 없다. 아주 작은 돈을 받더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일해야 한다. 농사를 짓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지우면 너무 힘이 든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게 생각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활동을 해야 한다. 일하지 않고 활동이 끝나는 날이 있다면 곧바로 죽음이 따라올지 모른다.
셋째, 친구가 있어야 한다.
친구는 아내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그 외 학교 동창들, 직장 동우회, 산악회 등에서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동변상련이라고, 같은 처지의 친구들끼리 부담 없이 좋은 교류를 함으로써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돈이 있어야 한다.
많은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하는데, 친구들과 교류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이 있으면 된다. 돈이 없어 가족이나 친척들,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지 못 한다면 이 또한 불행한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다섯 째, 취미활동이나 여가활용에 관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퇴직 후 갑자기 많아진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하는 문제는 사실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등산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골프를 하는 것도 한 두 달이면 더 이상 즐기기가 경제적으로도 만만치 않다.
결국은 평생 할 수 있는 취미나 특기를 살려 여가 활용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어야 된다. 서예나 난 치는 것을 배운다거나 악기를 하나 배우는 것은 정서적인 안정에 무척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기타를 배운다거나 색소폰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악기인 대금이나 장구, 사물놀이를 배우는 동호인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건강 단련을 겸해서 육체적으로 할 수 있는 등산이나 걷기, 에어로빅이나 기체조, 배드민턴이나 게이트볼 등도 좋은 여가 선용을 위한 노하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취미활동은 부부가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종교가 있어야겠다.
아무리 위의 것이 모두 충족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어가고 또 건강이 약해지면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어느 누구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죽음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교밖에 없을 듯하다. 종교가 만능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죽음에 관해 두려움을 떨치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왜냐면 종교는 모두 내세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서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 큰 기쁨과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대체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곳으로 가게 되고, 좋은 곳에서 부활을 하게 되고, 그 동안 그렇게 그렸던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까?
우리는 노년이다. 인생에 있어 하나뿐인 노년에 이제 봉착하였다. 이 노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들에게 주어 진 몫이다. 나의 몫인 것이다. <송석(松石)>
석촌호수에서 부부가 같이 운동을 하고 있다.
손주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노인
장기를 두는 노인들과 구경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한판이 끝나고 다시 한판을 준비하고 있다.
우측 노인분이 장기알을 먼저 다 준비한 것을 보니 앞 판에서 이긴 모양이다.
벤치에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 노부부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부부(왼쪽)와 친구(오른쪽)
혼자 불편한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 할머니
폐박스와 폐비닐을 수거해 가는 노인
리어카를 미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였다.
석촌호수에서 일하시는 분 같았다.
이 날(5월 15일) 놀이마당에서 송파산대놀이 38주년 정기발표회가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고 출연하신 분들도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공연을 관람하시는 분들도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현수막 좌상단에 송파구 '어르신 전용' 문화공간이라고 적혀 있다.
석촌호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송파구청 앞으로 한 노인분이 힘겹게 걸아가고 계신다.